▲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의 말이다.

정치권이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과 우려를 내놓는 걸 지켜보다 러스킨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국방 전문가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백승주(구미 갑) 의원을 공동선언이 발표된 날 저녁에 만났다. 백 의원은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질문을 받자 “‘9월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실질적으로 북핵보유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비교우위를 차지해가고 있는 재래식 군사태세를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북한이 한반도에서 절대우위의 군사력을 보장해 준 굴욕적 합의”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라고 밝혔는 데, 이는 1991년 12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1항 ‘남과 북한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약속보다 본질적으로 후퇴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과거 핵 폐기와 본질적 관련이 없는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 해체를 폐기하기로 했는 데, 이는 비핵화에서 큰 의미없는 조치라고 했다. 북핵의 전술적 사용수단인 미사일 발사대 역시 북한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군사적 의미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해서도 매우 야박한(?) 평가를 내놨다.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다양한 분야 교류협력에 대한 군사적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 등을 합의했지만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상의 남북불가침 내용보다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지상 적대행위 중지(5㎞), 해상적대행위 중지(80㎞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 공중 적대행위 중지(서부 40㎞, 동부 80㎞) 등의 내용 역시 아군의 감시능력 무력화, 도발시 즉각적인 대응을 현저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의원은 “북한은 2015년 8월 목함도발 지뢰 사고 직후에도 적대행위 중단을 약속했지만 몇 개월후에 전략적 도발을 했다”면서 “약속 이행을 담보할 조치로서 남북한 공동군사위원회 운영을 약속했지만 이행을 담보할 어떠한 조치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북핵보유를 기정사실화시켜주고 우리 군의 감시·대응능력만 크게 약화시킨 합의라는 최악의 평가를 내놨다.

이에 반해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호평일색이다.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관련국 모두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사흘 전에 받았다. 매우 좋은 소식이다.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고, 중국의 외교 대변인도 “새롭고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 , 러시아 대변인은 “실질적, 효율적인 행보를 당연히 지지하고 환영한다”, 일본 관방장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는 환영일색의 반응들을 소개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은 이처럼 다른 생각과 걱정들을 헤쳐나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지극히 어렵고 고된 길이란 생각에 잠겨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