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슈가 논란의 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연내 성사 여부를 놓고 언론들이 ‘눈 가리고 코끼리 다리 만지듯’ 설익은 예측들을 보태고 있는 가운데 연일 애매한 답변만 이어가던 청와대는 10일 사실상 연내답방이 어려워졌음을 고백했다. 상식에 비춰볼 때 지구상에 이런 정상회담은 없다. 목 빼고 한없이 김정은의 처분만 기다리는 듯한 청와대 행태에 자존심 상해하는 국민도 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세기적 사건이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지역인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지도자가 평양을 다녀오는 일은 벌써 3차례나 있었다. 핵무기와 핵미사일을 한사코 개발하면서 긴장지수를 높여온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인식돼왔다. 강력한 국제적 압박과 제재가 여전히 진행 중인 북한의 지도자가 서울로 내려오는 일은 엄청난 사변이 아닐 수 없다.

불행한 유혈 충돌의 역사가 깊은만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맞는 남한의 시각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듣도보도 못한 단체가 생겨나고, 이에 맞서는 ‘백두청산위원회’라는 단체도 출범했다. 두 단체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김 위원장에 대한 찬반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슈마다 두 패로 갈려 찬반을 다투는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도 엇갈린다.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환영’ 답변이 61.3%로 ‘반대’ 응답(31.3%)의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여론조사 공정’의 조사에는 ‘반드시 필요한 방문’이라는 응답이 48.8%, ‘적절하지 않은 방문’이라는 응답은 46.2%였다.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백승주(구미시갑) 자유한국당 의원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한 발언에 냉정하고 성숙한 관점이 보인다. 그는 말한다. “김정은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비핵화 문제는 연계하지 말아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백두칭송의 김정은 만세 소리, 백두청산의 세습통치 반대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나오는 자유민주주의 혼성 4부 합창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가치관이 민주주의와 경제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김정은이 알게 해야 일당 독재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행동은 모두 지양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김정일 답방을 놓고 “지지율이 급락하는 문재인 정부가 ‘구명조끼’나 ‘산소호흡기’처럼 써먹으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깎아내리는 일부 극우 인사들의 모진 힐난이 부디 사실이 아니길 빌 따름이다. 차분하고 성숙한 시각, 슬기로운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