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될 무렵, 진보 성향의 의사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이 인간의 목을 베기 위해 만든 기계다. 당시 기요탱은 프랑스 처형 제도의 개혁을 위해 공포스럽고 지저분한 전차 바퀴 사형법이나 교수형을 대신할만한 단순한 처형 방법을 제안했다. 기요탱의 기계장치는 고통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사형을 민주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즉, 참수형은 전통적으로 귀족에게 행해지는 처형법이었지만 효율적으로 목을 벨 수 있는 기계가 나옴으로써 이 특권을 모든 계급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1791년에 프랑스 국민공회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위원회를 소집했다. 기요탱도 여기에 포함됐으며, 주도자는 왕실 의사이자 외과의학회 서기관이었던 앙투안 루이 박사였다. 기본 디자인은 높은 틀의 꼭대기에 날을 매달았다가 떨어뜨리는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기계들보다 진화한 점은 경사진 삼각날이었다. 원래는 루이 박사의 이름을 따서 ‘루이종’이나 ‘루이제트’로 불렸던 단두대는 곧 ‘기요틴’이라고 불렸으며 ‘인민의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의 목을 자르는 처형기구로서, 혁명적 극단주의의 상징이 됐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됐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한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산악파는 국민공회 안에 최고 기관인 공안위원회를 설치해 단두대에 피가 마를 틈 없이 반혁명파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 시기에 단두대에 목이 걸렸던 희생자들이 자그마치 1만 명이 넘었다. 그 이후 국민공회는 로베스피에르를 고발했고, 그 역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고 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최근 세월호 유가족 민간인 사찰 의혹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살기등등한 적폐청산의 칼끝이 또 한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다”면서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가 생각난다”고 비판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야당 의원의 비유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은 정부가 얼마나 귀담아들을지 의심스럽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