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
서인도 ④

▲ 기차에 오른 인도사람들. 저마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차에 오른 대부분 승객들이 짐이 엄청나게 많다. 평균 4~5개씩은 돼 보였다. 아, 그렇구나. 한국에서야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가장 긴 구간이 서울-부산이고, KTX를 탄다면 이동에 3시간이 채 안 걸린다.

하지만, 인도는 2~3일을 기차 안에 머물 수도 있으니 `살림을 통째 옮겨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아, 인도는 크구나. 크고도 넓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이 허탈한 웃음을 불렀다.

뭄바이를 출발한 기차는 해가 저물 때까진 별문제 없이 달렸다. 브라만 아줌마와 함께 기차 안을 오가는 차이 장수를 불러 차(茶)도 마시고, 먼지와 쓰레기를 치우며 기자의 발밑을 수시로 걸레질하는 아이에게 “고맙다”며 작지만 팁도 줬다. 그 소문이 어디서 어떻게 퍼졌는지 자리로 찾아오는 아이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고, 대략 4~5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돈을 줬던 것 같다.

 

▲ 해변에서 관광기념품을 파는 인도 여인. 코를 뚫은 장신구가 특이하다.
▲ 해변에서 관광기념품을 파는 인도 여인. 코를 뚫은 장신구가 특이하다.

누웠다가, 앉았다가,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다가, 승강장 난간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다가를 반복하며 10시간쯤 달렸을까? 멈춰선 기차가 1시간이 넘도록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이거 큰일이네. 티빔역(驛)에서 호텔로 나를 데려다줄 사람이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며 기다리고 있을 텐데”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켜둔 조명이라곤 깜빡거리는 낡은 형광등 서너 개가 전부인 조그만 간이역에서 멈춘 기차의 연착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에 가까워지니 심사가 조급해졌다. 그런데 이것 봐라. 안절부절 못하며 밖을 내다보며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사람은 기자 하나뿐이다. 승객 대부분이 멈춰버린 기차에는 관심이 없는 듯 콧노래나 부르고 있었다.

이 `괴이한 낙관`을 한참동안 지켜보자니 놀랍게도 기자의 마음까지 느긋해졌다. 기차 난간을 내려가 웃는 얼굴로 모여 웅성대는 사람들 틈에 끼어 기차가 멈춰선 이유를 귀동냥했다. 10여 명의 인도인이 기자를 둘러싸고 그 연유를 설명해줬다.

 

▲ 인도 해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념품 가게.
▲ 인도 해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념품 가게.

기차의 엔진이 고장 났고, 그걸 고치다가 여기에선 수리가 불가능하단 걸 알고는 고장난 엔진을 실은 기차 한 량을 새로운 엔진이 있는 도시로 보냈다는 것. 이곳에서 그 도시까지는 편도 2시간 거리. 기차가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합하면 4시간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2시간은 더 기다려야 기차가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발을 동동 굴러봐야 소용이 없을 터였다. 에라, 모르겠다. 낮게 코를 골며 잠든 브라만 아주머니처럼 기자도 기차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은 어두운 밤을 인내하며 기도한 사람에게만 오는 게 아니라 내처 엎드려 잔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왔다. 갑자기 이성부(1942~2012)의 시 `봄`이 떠올랐다. 시인은 봄을 기다렸고, 기자는 `새로운 엔진`을 기다렸다.

 

▲ 석양이 아름다운 인도 고아 해변의 저물녘 풍경.
▲ 석양이 아름다운 인도 고아 해변의 저물녘 풍경.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그렇게 뒤척이다 얼핏 잠이 들었는가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수리를 끝낸 철마(鐵馬)가 언제 멈춰있었냐는 듯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승무원에게 “여기가 어디냐? 티빔역은 아직 멀었느냐”고 물었다. 바로 다음이 목적지인 티빔이란다.

늦어진 열차 도착시간 때문에 마중 나온 사람이 가고 없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100여 명의 노숙자가 몸을 포개가며 누워 있는 새벽의 티빔역 대합실. 기자의 영문 이름을 쓴 피켓을 든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 인도 서쪽에 위치한 아라비아해는 매력적인 열대의 풍광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 인도 서쪽에 위치한 아라비아해는 매력적인 열대의 풍광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이렇게 늦었는데 왜 안 가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당신을 기다려 목적지로 데려가는 게 내 책무”라고 답한다. 인도 사람들이 책임감 없고, 약속을 안 지킨다는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 사람만을 놓고 보자면 말이다.

청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해변 근처 호텔로 갔다. 곤히 자던 종업원이 눈을 부비며 여권을 받아들고 숙박부를 가져온다. 호텔은 썩 괜찮았다. 침대 시트와 커튼이 깨끗했고, 욕조까지 있었다. 미지근한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곤 인도산 `킹피셔 맥주`를 한 병 급하게 들이켰다. 라벨에 새겨진 물총새가 귀여웠다.

인도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이틀간 수천km의 거리를 비행기로 날아오고, 기차로 달려왔다. 그 고단함은 `지상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아라비아해가 보상해 줄 것이다.

샤워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해변 산책을 나선 게 오전 10시쯤이었다. 해변은 노천카페로 몰려든 인도인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태국의 푸켓이나, 필리핀의 보라카이와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이제 겨우 날이 밝았건만 벌써부터 해질녘이 기다려졌다.

▲ 인도 해변 노천식당에 가면 맛볼 수 있는 생선 바비큐.
▲ 인도 해변 노천식당에 가면 맛볼 수 있는 생선 바비큐.
독특한 인도 음식들

저마다의 특성을 지닌 음식을 맛본다는 건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인도 역시 음식을 통해 기후와 관습, 종교적 특성과 금기까지를 짐작할 수 있다.

힌두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고, 무슬림은 일생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종교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날씨는 다양한 향신료를 즐기는 인도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많게는 하루에 10잔 이상 차(茶)를 마시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게 인도다.

■ 카레 (Curry)

사전적 의미로는 `강황과 생강, 후추와 마늘 등의 향신료를 섞어 만든 매콤한 음식물`을 뜻한다.

인도 사람들은 `커리`라고 발음한다. 카레의 재료가 되는 향신료는 앞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수천 종에 이른다.

인도인들은 갖가지 채소와 각종 고기류, 여기에 수십 종의 향신료를 섞어 카레를 만든다.

이렇게 요리된 것을 밥이나 빵에 곁들여 먹는 게 인도인들의 주식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걸쭉하게 만들지만, 인도의 카레는 묽고 향이 강한 게 특징이다. 인도를 처음 방문한 여행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향기 탓에 질색하는 경우도 있다.

 

■ 차파티 (Chapati)

품질 좋은 인도의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둥글게 반죽해 화덕에 구운 빵이다.

인도 북부사람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차파티를 먹는다. 여행자들 역시 이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재래시장 허름한 점포에서 차파티를 굽는 상인들은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기술로 반죽을 하고, 뜨거운 화덕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빵반죽을 척척 붙여낸다.

관광객들에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효모나 팽창제를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와 물, 소금만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 차이 (Chai)

인도만이 아니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남부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료다. 뜨겁게 끓인 홍차에 소나 양의 젖을 섞은 것으로, 지역에 따라선 생강과 계피 등 각종 향신료를 첨가해 만들기도 한다.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최소 하루에 수십 번은 차이를 마시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카스트에 자부심을 가진 브라만(Brahman)에서부터 세탁업이나 청소업에 종사하는 가장 낮은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까지 차이를 즐기는 것은 똑같다. 가격도 마시는 곳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호사스런 호텔에서는 1만원을 받기도 하지만, 조그만 토기에 담아 거리에서 판매하는 차이는 한 잔에 100~2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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