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화사한 꽃을 보며 떠올리는 ‘불멸’

연분홍 벚꽃이 피어난 길에서의 산책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언스플래쉬
연분홍 벚꽃이 피어난 길에서의 산책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언스플래쉬

꽃샘추위가 며칠을 이어져 넣어뒀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게 만들고, 어둡고 습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궂은비가 잠시잠깐 심사를 우울하게 만들어도 결국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봄꽃의 개화가 늦어지고 있어, 꽃이 없는 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 뉴스와 신문 기사를 통해 들려오지만 머지않아 겨울이 온전히 사라지고, 봄이 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수천 년간 변하지 않은 세상사 순리.

추위는 몸과 더불어 의식까지 일정 부분 마비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다. 봄에 비해 겨울엔 이런저런 인간의 상상력이 뻗어나가기 어렵다.

그것을 증명하듯 완연한 봄에 가까운 지금은 오만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3월 말 환한 햇살 아래를 걷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철학자 흉내를 내게 된다. 이는 봄 산책이 주는 선물 같은 것.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세상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를 ‘불멸(不滅)’이라 칭해왔다.

‘바람’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 돌도끼로 짐승을 사냥해 불에 익히지도 않고 날고기를 먹던 시절의 바람과 지금의 바람은 그 형태가 다르지 않다. 수백만 년을 동일한 방식으로 어디선가 불어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양도 그렇다.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기에 어떤 이유에선가 생겨나 현재도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뜨겁게 이글거린다. 수명이 다하면 빛을 빼앗기는 형광등과 백열등 수천만 개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원성을 지닌 채.

인간은 제아무리 잘나봐야 100년을 살기 힘든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일까? 영원 혹은,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왔다. 바람, 태양과 더불어 ‘꽃’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이미지를 가진 사물 중 하나다.

‘봄은 꽃의 전성기’라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사념과 고민이 늘어나는 이 계절. 인간보다 오래전 생겨나, 인간보다 더 오래 존재할 것이 분명한 꽃을 보며 예술가와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떻게 문학과 노래로 표현됐을까?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이야기되는 퇴계 이황(1501~1570)부터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과 가수가 꼼꼼히 살펴 그 불멸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낸 ‘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 시인 정호승

촉촉한 연민과 감수성 가득한 문장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서정시인 정호승은 지금 이 시기쯤에 벚꽃을 본 듯하다.

화사한 연분홍 개화와 무장무장 쏟아져 내리는 무더기 낙화 앞에서 시인은 무한함과 유한함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은 시를 쓴다. ‘꽃을 따르라’는 그의 명령이 선지자(先知者)의 예언처럼 들린다.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냐

돈을 따르지 말고

지는 꽃을 따르라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

‘피는 꽃’이 아닌 ‘지는 꽃’의 서러운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시의 핵심 문장은 ‘돈을 따르지 말고/지는 꽃을 따르라’가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삶에서 쉽사리 실천할 수 없는 예술가의 청빈한 명령.

모두가 알고 있다.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는 걸. 그러면서도 유한한 욕망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들. 정호승의 시는 독자들에게 아프게 묻는다. “돈과 꽃 중 어떤 게 불멸할 것인가?” 속인(俗人)들에겐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화사하게 피어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목련. /언스플래쉬
화사하게 피어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목련. /언스플래쉬

□ 사랑했던 기억은 불멸하는 것… 가수 양희은

1편의 노랫말이 조잡한 시 10편을 압도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한국에는 노래만 잘 부르게 아니라, 가사를 탁월하게 잘 쓰는 가수가 몇몇 존재한다. 양희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

옛사랑의 기억을 가슴 안에 지니고 사는 중년들은 해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에 매혹된다. 30대와 40대 시절이 그랬고, 더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목련은 어떤 꽃보다 먼저 화들짝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린 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매력을 보여주다가 녹슨 쇠그릇처럼 떨어진다. 그 드라마틱한 개화와 낙화가 우리 모두가 겪었던 첫사랑과 몹시 닮았다.

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어떤 사랑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기억만은 불멸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는 양희은의 노랫말이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게 아닐지.

 

누가 뭐래도 봄은 불멸하는 꽃들의 전성기다.  /언스플래쉬
누가 뭐래도 봄은 불멸하는 꽃들의 전성기다. /언스플래쉬

□ 사는 내내 매화를 닮으려 했다… 퇴계 이황

지금으로부터 454년 전인 1570년 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이황은 방문을 열고 마당의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곤 말했다. “매화에 물을 줘야겠구나.” 이 짤막한 문장은 그대로 퇴계의 유언(遺言)이 됐다.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별났다고 한다. ‘어떤 추위에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개를 이유로 매화를 선비처럼 대접한 그는 아래와 같은 칠언절구(七言絕句)로 그 꽃을 예찬했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 앞에 매화나무에 눈꽃이 가득하구나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티끌 같은 세상살이니 꿈마저 어지럽고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고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울며 나는 기러기 보니 생각이 많아지네.

티끌 같은 세상살이에 포박된 인간의 삶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힐 유한함 안에 있다. 하지만, ‘달’과 ‘매화’는 퇴계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항상 존재할 무한한 불멸성을 지닌 것.

평생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심성의 근본을 찾아 일로매진했던 노학자가 유독 봄꽃을 아꼈던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혹, 거기서 불멸하는 어떤 정신을 발견했던 건 아닐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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