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눈동자마저 물 들듯… 사파이어 빛깔 반짝이는 바다

등록일 2017-03-30   게재일 2017-03-31

공유
default_news_ad1

- 낯선 길 위에서
필리핀 ①

   
▲ 비사야제도에서 만난 필리핀 소년. 목선에 올라 여행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세상엔 `아름다운 해변`이 적지 않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이탈리아의 아말피, 태국의 피피 섬…. 하지만, 청아한 물 빛깔과 새하얗고 고운 모래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구 위 어떤 해변도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에 미치지 못할 듯하다. 개인적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기자는 산보다는 강을, 강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해서 `만약에 전생(前生)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나는 커다란 농어 또는, 나붓거리는 해초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사파이어 색채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적지 않은 나라의 해변을 여행했다. 바다를 편애하는 사람의 필리핀 중부지역 여행은 당연지사 즐거웠다. 비사야제도의 여러 해변을 기쁘게 만났다. 속절없고 바람 같은 인간의 생을 위로해주는 새파란 물결과 일시에 들끓다 허망하게 하얀 포말로 사라지는 파도. 그것들 속에서 울고 웃었다. 원시의 풍광을 지닌 발리카삭 섬, 석양이 기가 막히게 근사했던 팡라오 섬 알로나 비치, 물빛 고운 보홀 항구, 짙푸른 바다와 새파란 하늘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북적임과 번잡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세부….

그랬다. 위에 열거한 바다를 떠돌던 때 기자의 손에는 600원짜리 맥주 `산 미구엘`과 소다수와 라임즙을 섞은 필리핀 전통주 `탄두아이`(Tanduay)가 늘 들려있었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해변들.


 

  ▲ 필리핀 사람들은 `웃음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환하게 미소 짓는 필리핀인들.  
▲ 필리핀 사람들은 `웃음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환하게 미소 짓는 필리핀인들.

▲ 한국 호텔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던 필리핀 청년

2번째로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는 수도인 마닐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과 우려 섞인 이메일을 보내왔고, 엄마는 여러 차례 국제전화까지 걸어와 “여행을 그만두고 어서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기자는 그때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일로일로), 다시 쾌속정을 타고 1시간 30분(바콜로드), 거기서 또 네그로스 섬을 횡단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인 두마게테에 있었다. 폭탄이 터진 지역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테러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인터넷 속도가 한국의 10분1에도 미치지 못하는 두마게테의 PC방 컴퓨터를 이용해 지인들과 엄마를 안심시킨 후에야 비사야제도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가 있는 지역은 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수백 km 떨어져있으니, 아무 염려 마세요. 저는 남태평양의 환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우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이메일 답신을 보내고는 갑자기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스콜(squall·강풍과 천둥을 동반하는 열대성 소나기)에 젖어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셨다.

그날 밤엔 두마게테의 한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다는 스물한 살 청년과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포켓볼을 쳤다. 기자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그가 “내 꿈은 한국의 호텔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호텔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니. 그 말이 이상스레 쓸쓸하게 들렸다.

지난 시절. 체 게바라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에 관해 말했고, 가수 조안 바에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꿈`을 노래했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평등을 선물하는 것이 청년에게 어울리는 꿈일 것인데, 너무나 현실적인 `꿈`밖에는 말할 수 없는 스물한 살 젊은이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 싱싱한 열대과일이 진열된 필리핀의 조그만 상점.  
▲ 싱싱한 열대과일이 진열된 필리핀의 조그만 상점.

▲ 팡라오 섬과 발리카삭 푸른 바다와 만나다

여행을 하다보면 슬픔과 쓸쓸함도 경험하게 되는 법. 필리핀 청년의 맑아서 서러워 보이던 눈빛을 뒤로 하고 다음 날 오후엔 쾌속정을 타고 조용한 섬 보홀로 갔다.

산호 가루로 형성됐기에 물빛이 사파이어 색채로 반짝이는 알로나 비치와 거기서 조그만 목선을 타고 들어간 발리카삭 섬의 원시적 풍광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발리카삭 섬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전기가 끊기는 곳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가 하나, 구멍가게가 한둘, 식당이 두어 곳밖에 없는 조그맣고 소박한 섬. 주민이라곤 닭과 돼지를 키우며 관광객들에게 조개껍데기로 만든 기념품을 파는 원주민 수십 명이 전부였다.

거기서 하루를 묵었다. 복잡하고 바쁜 한국 도시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불편을 감수할 만큼 즐거웠다. 잠시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풍광과 순박한 섬 주민들 속에 섞여 함께 웃을 수 있었다.

 

  ▲ 네그로스 섬을 횡단하는 낡은 버스에 오른 기사와 승객들.  
▲ 네그로스 섬을 횡단하는 낡은 버스에 오른 기사와 승객들.

먹음직해 보이는 참치구이와 신선한 망고주스로 저녁을 먹고는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조그만 구멍가게에 설치된 노래방 기계를 이용해 팝송도 한 곡 불렀다. 노래 실력에 관계없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발리카삭 섬 사람들. 사파이어 색채를 닮아 짙푸르고 투명한 바다, 웃음의 힘으로 가난을 이기며 살아가는 필리핀 시골마을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미소와 빵을 나눌 수 있었던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소설 중에 `팔색조`라는 게 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이렇게 한 번씩 사로잡히고 나면 한참은 괜찮아져요.” 그 문장은 여행의 매혹이 없었다면, 다장조의 동요 같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 힘들었을 기자의 삶을 위로해왔다.

여행은 그랬다. 언제나 그랬다. 크고 작은 비행기와 고속 페리, 창문이 없어 바람 속을 달리는 듯한 로컬버스와 매연을 뿜어대는 트라이시클(tricycle·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인정 많은 기사가 운전하던 지프니(jeepny·지프를 개조한 필리핀 버스)와 에어컨이 고장 난 택시를 타고 떠돈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에서의 2주일은 행복했다.

그 시간이 앞으로도 한참 동안 기자의 단조로운 삶을 견디게 해줄 것임을 믿는다. 돈? 중요하다. 일?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생에 와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주는 여행지에서의 한 조각 웃음보다 소중할 수 있을까?

  ▲ 하늘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작은 섬. 아름답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필리핀의 작은 섬. 아름답다.
   
 
필리핀은…

7천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
전통문화에 스페인·미국문화 혼합

아시아 대륙 남동쪽 태평양에 흩어져있는 7천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다.

공식 명칭은 필리핀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적도 부근이라 대부분 지역이 1년 내내 열대기후다. 1565년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9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이후에도 오랜 기간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다. 온전히 독립을 쟁취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필리핀해(海), 남중국해, 셀레베스해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해있다. 면적은 약 30만400㎢. 국토는 북부의 루손과 수천 개의 조그만 섬으로 이뤄진 중부의 비사야제도, 남부의 민다나오로 크게 3등분 할 수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기에 태풍의 발생지이며, 환태평양조산대에 자리해 있어 지진과 화산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타이완과 영토·영유권 분쟁을 겪었고,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해안선을 모두 합치면 자그마치 3만6천289km에 이른다. 수도는 마닐라(Manila)고, 국민의 절반 정도는 타갈로그인(29%)과 세부아노인(15%)이다. 지역에 따라선 일로카노족(9%)과 비사야족(7%)이 다수인 곳도 있다. 필리핀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85%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톨릭교도다. 무슬림국가인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민다나오는 지리적 영향으로 이슬람교도가 많다. 이로 인해 남부지역에선 종교간 갈등으로 오랫동안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용하는 화폐는 페소(Peso). 1페소는 한국 돈으로 약 23원. 물가가 비싼 관광지가 아니라면 50~100페소 정도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인구는 1억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7천 개의 섬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어려움을 감안하면 정확한 데이터는 아닌 듯하다. 평균수명은 71세.

다양한 종족이 만들어낸 전통문화에 스페인과 미국의 문화까지 합쳐진 필리핀의 용광로 같은 `복합성`은 국민의 특성을 몇 마디 짧은 설명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한국인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몇몇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필리핀은 여전히 동서양의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휴양지다. 깨끗한 바다와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밀림, 환한 얼굴로 웃는 낙천적인 사람들과 신선한 해산물 요리, 거기에 저렴한 물가까지 생각한다면 필리핀 여행이 주는 매혹을 떨치기 어렵다. 유명한 휴양지인 보라카이, 세부, 팔라완에는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고급 빌라와 호텔도 많다. 적지 않은 신혼부부들이 이곳에서 허니문을 만끽한다. 휘영청 떠오른 달 아래 조용한 해변에서 둘만의 저녁식사를 즐기며.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많이본 뉴스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